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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의 사연"처리 문제"
진주성 의기사 앞 '의랑 논개의 비'뒷면에 새겨져 있는 '논개의 사연'
이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기록돼 있어 역사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제기돼 앞으로 이 빗돌의 처리 방향에 대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비는 1954년 당시 의기창렬회가 세운 것으로 앞면의 글은 설창수
(薛昌洙)가 짓고 글씨는 오제봉(吳濟峰)이 쓴 것으로 분명히 새겨져
있으나 뒷면에 있는 '논개의 사연'은 누가 짓고 쓴 것인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글의 내용 자체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논개에 대한 문헌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실재
하지도 않은 지명(地名)을 쓴 것이나 출신성분을 잘못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고,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을 이룬 목사(牧使) 김시민(金時敏)장군
을 '통판(通判)'으로 새겨 넣었으며 삼장사의 경우도 김성일(金誠一)
조종도(趙宗道) 이로(李魯)가 정설인데 김천일(金千鎰) 최경회(崔慶會)
황진(黃進)으로 기록한 점, 특히 1593년 계사순의때 순절한 민관군이
6~7만인데 육천으로 기록돼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계사년 병화(兵火)로 불타 1618년에 중건한 촉석루에서 전승연을
벌인 것처럼 잘못 표현 돼 있을 뿐만 아니라 문헌에는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고 기록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주성 전투
에 참여하지도 않은 '모곡촌(毛谷村) 일설 석종로(石宗老)'를 새겨 넣는
등 여러 부분에서 사실과 다르게 오류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주시는 지난 28일 그릇되게 빗돌에 기록돼 있는 부분에
대해 삭제를 건의한 진주문화원 관계자 및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之助)
등을 들어 비문 삭제를 요구한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의 저자인 마산의
향토사학자 조중화씨, 학계,시의원, 언론계, 사회단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들었다는 보도다.
본보 보도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이 비의 뒷면에 새겨져 있는 '논개의
사연'의 내용들이 상당부분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등 문제가 있다
는 인식을 같이 했지만 처리방법 등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앞으로 이 비의 처리 방향에 대해 공론을 거쳐 역사를 왜곡
시킬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금석문(金石文)이라 할지라도 바로잡
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빗돌을 세울 당시 의기창렬회의 순수
성도 고려하는 선에서 신중하게 처리되기를 바란다.
2000년 12월 30일자 경남일보 사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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